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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agram⠀⠀⠀⠀⠀⠀⠀⠀⠀⠀⠀⠀⠀⠀⠀⠀ 남편의 명칭이 남 편인 것은 어쩐지 억울하다. 나는 B에게 남편이라고 부르는 게 자연스러워진다. 그리고 한편 억울해진다. 그 애는 나조차도 내 모습이 싫어지는 순간 또한 내편인데. 그렇다면 남편은 내편으로 불러야 하는 게 아닐까? 오늘은 하루종일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견딜 수 없었지만 그렇지 않으면 정말이지 앞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될 것 같았다. 유연하다,는 의미를 곱씹느라 삼십 분을 할애했지만, 정확히 딱 삼십 분뿐이었다.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무례함을 넘기고 가야 하는 것과 같은 뜻일까? 그런 생각 잠깐. 아, 사람이 싫어진다. 실망하게 된다는 것과는 다른 의미다. 절대로 저런 사람으로는 나이 들고 싶지 않다, 는 생각에 중독된다. 일하는 사람으로 나이를 먹는 결말이 커리어우먼은 아니더라도. 함께 일하면 즐거운 사람으로 남고 싶다. 적어도 일하는 수진으로서는. 아침에 일어나서 조금 울고 싶었다. 직장이 멀어진 탓이겠거니 했고, B가 바보 같은 말들로 나를 웃겨도 줬지만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씩씩하게 머리를 정돈하고 신발을 신기 직전, 그때 메일함을 열어보지 말걸. 의도가 구분되지 않는 모호한 메시지들은 한껏 예민해진 사람을 주저앉히기에 충분하다. 나는 나의 예민함을 탓하고 싶지 않다. 너무 예민해서 그렇다,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된다,는 말에 억지로 씩씩해져도 봤지만 내가 예민한 나로 받는 상처들을 덤덤한 척하기에 던져지는 말들은 너무 무성의하다. 오늘 마포로 향하는 지하철을 탔다면, 나는 아마 꼴사납게 정말 울었을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항상 곁에 있고 싶었고, 보고 싶었다면 이제는 떨어져 있어도 든든함이 느껴지는 것은, 남편이라고 불러야 하는 완벽한 내편이 되었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기 때문일까? 그 애와 함께 꾸민 집안에서 하루종일 보호받고 있다는 기분이 드니, 어리석게도 또다시 힘이 생긴다. 맛있는 것을 먹고 싶은 힘, 꼭꼭 씹어서 넘기고 싶은 힘, 새로운 일주일이 오면 보란 듯이 예민하지 않은 척할 힘이. 오늘 저녁엔 돼지고기를 삶고 퇴근하는 B를 현관에서 맞이해야지. _남편을 기다리며 오후에 쓴, #수진에세이 #수진기록✍🏻
Instagram⠀⠀⠀⠀⠀⠀⠀⠀⠀⠀⠀⠀⠀⠀⠀⠀ 쓰는 행위와 떨어져서 우두커니 서 있는 날들이었다. 나의 행복과는 별개로 사람들로부터 멀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가장 가까운 연인도 타인인 것을. 완벽한 이해란 존재할 수 없다는 걸, 슬프게도 알게 된다. 그러나 때때로, 아니 내게 있어 누군가를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은 나를 가장 힘겹게 한다. 이해로 넘어설 수 없는 벽. 그건 마치 눈에는 밟히지만 해결할 수도, 갖다 버릴 수도 없는 형용할 수 없는 덩어리 같다. 비로소 이해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해 너그러워지는 나 스스로를 이해해야만,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이해할 수 없음을 이해하는 것은, 어쩐지 내게는 포기처럼 보인다. 사람이 사람을 포기하는 것만큼 무력한 것도 없으니까. 알아채지도 못한 사이, 여름이 왔다. 나는 차라리 뜨거운 날씨에 절여져서 바닥난 체력을 핑계로 사람을 포기하려 든다. 그런 나를 정당화한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나의 방어기제가 아니었으면 하는 모순. 덥다. 요즘은 그래서 글을 쓰지 못했다. #수진에세이 #수진기록✍🏻
Instagram⠀⠀⠀⠀⠀⠀⠀⠀⠀⠀⠀⠀⠀⠀⠀⠀ 2024, 4월 닫으며✍🏻 1. 꽃놀이를 다녀왔다. 언제나 모든 불행과 모든 행복은 겹쳐서 온다. 나는 많이 행복하고 조금 걱정되었으나 금세 안정되었고 우리는 여전히 사랑의 마음을 서로의 순간에 실어주었다. 슬럼프가 극복되는 소리가 조금씩 들려왔다. 봄은 조금 위험한 계절. 모든 공간이 낭만이라 현실에 우두커니 서있는 내가 조금 낯설 수 있다. 그 간극을 잘 좁히는 것이 어른이 된 나의 몫이다. 2. 테니스를 다시 시작했다. 이번엔 제대로 해야지. 이제 B가 차로 바래다주지 않아도 걸어갈 수 있을 거리에 연습장이 있다. 공을 치고 있으면 슬럼프니 뭐니 잡생각이 사라진다. 나는 가끔 내가 아주 대단하길 바라고, 내가 아주 특별하길 바라며, 내 직업과 프로젝트가 남들보다 빛나길 바라는 사람 같다. 서른이 되고 나니 그런 것들이 나를 자유로부터 자꾸만 멀어지게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차라리 ’직장인‘으로 나를 정의하면 오히려 마음이 평온해진다. 직장 밖을 나오면 직장인이 아닌 ’어떤 것의 나‘로 나를 재정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테니스를 치는 나‘가 참 마음에 든다. 3. 훌쩍 여행을 떠난 전주. B는 긴 휴식기간을 얻었고 나는 마침 그놈의 슬럼프라. 프로젝트가 온고잉 중이니 비행기를 탈 수도 없고 그러니 차선책으로 선택한 국내 여행이다. 서울에서 아주 조금만 차를 타고 넘어갔을 뿐인데, 그곳에서는 관광하는 사람들로, 시간을 느릿하게 쓰는 사람들로, 일상을 풀냄새로 채운 사람들로 가득했다. 우리답게 B와 나는 준비 없이 떠나, 맛집도 명소도 제대로 둘러보지 못했지만 나는 여전히 유명한 데이트코스와 핫플 사이에 있지 않는 두 사람이 좋다. B와 수진다워서. 4. 할아버지가 떠난 4월. 벌써 2년이 흘렀다. 가족들이 할아버지 앞에 모여 신나게 웃고 조금 울었다. 훌쩍 자라 이제 걷기 시작한 조카와 나의 결혼식 축가를 자처하는 가족들 사이로 불쑥 튀어나온 ’구서방‘이라는 단어. 자리에 없던 B는 귀가 간지러웠을지도. 아 이렇게 되는구나 가족은. 이하 생략. 5. B와 나는 아주 자주, 비슷하거나 같은 생각을 한다. ’이래서 부부인가 봐‘ 우리는 그런 말을 하면서 서로 흡족해한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일 수 있는 첫 번째 이유는 여전히 ’그럼에도 불구하고‘이기 때문이다. 너무 얄밉지만, 너무 화가 나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 짜증이 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B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6. 언젠가 동생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누가 언니더러 위험한 길을 같이 가자 그러면 진짜 싫을 것 같아. 내가 왜? 굳이? 이런 생각들 것 같거든. 근데 B가 가시밭길을 같이 가자 그러면 그냥 손잡고 갈 것 같아. 그 애랑 가는 길은 다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속으로 생략했던 말은, ’B가 내 발밑으로 오는 가시라면 다 잘라줄거고, 어쩌면 그 가시가 이쁠지도 모르고.‘ 7. 한 20년 흘러서, 우리가 중장년층이 되었을 때, 이 글을 본다면 나는 후회하고 있을까? 그때도 너무 얄밉고 짜증 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사랑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8. 4월은 정말, 낭만으로 점철되어 위험한 달. #수진에세이 #수진기록✍🏻
Instagram⠀⠀⠀⠀⠀⠀⠀⠀⠀⠀⠀⠀⠀⠀⠀⠀ 2024, 3월 닫으며✍🏻 1. 가끔은 세상이 내 해답을 받아칠 때도 있다. 받아들이기로 한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더 많이 좋아하게 됐다. 나는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배운다. 마법과도 같은 사랑은 있었다, 고 나는 언젠가 만날 나의 찰리에게 말해줄 수 있을 것 같다. 3. B와 하루 24시간을 함께하게 됐다. 우스갯소리로 제도에 묶인다고들 하지만, 묶여도 좋을 만큼 나는 그 애를 사랑하고 그리하여 우리는 결혼하기로 한다. 여즉, 준비는 미미하다. 모든 것들이 처음이지만 서로가 난생처음 겪는 것들을 함께 준비하는 것만큼 골치 아프고 설레는 것도 없다. 4. 이제는 영원한 것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다. 그만큼 불확실성에 불안해하지 않는 사람이 된다. 모두 B에게서 배웠다. 5. B의 친구를 만났다. 보자마자 나는 속으로 ’착한 사람!‘이라고 외쳤다. 그 애의 친구이니 자연히 좋은 사람이겠지만은. B의 친구와 만나려면 나는 평소보다 두배로 귀를 열어야 한다. 친구는 나를 배려해 자기의 언어에서도 가장 쉽고 이해하기 좋은 단어로 대화를 이어가 주었다. 나는 둘을 번갈아보며, ’꼭 자기 같은 사람을 소개해주네.‘ 하며 웃었다. 식상할지도 모르는 그 이유, 나는 B를 선한 사람이라 좋아한다. 무수한 이유 중 하나. 6. 결론은 이렇게 다다른다. B는 이 세계에서 가장 특별한 사람. 그 애는 여유가 없다는 핑계를 잘 대지 않는 사람이다. 본인의 환경이야 어떻든, 타인의 능력치를 그대로 인정해 줄 줄 아는 사람. 어떤 질투도 어떤 비교도 없다. 7. 3월은 날씨로 치면 때아닌 장마 같았지만, 나는 늘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말을 믿는다. #수진에세이 #수진기록✍🏻
Instagram⠀⠀⠀⠀⠀⠀⠀⠀⠀⠀⠀⠀⠀⠀⠀⠀ 2024, 2월 닫으며✍🏻 1. 새해를 맞이했다. 어색한 만 나이를 뒤로 젖혀두면 에누리 없이 계란 한 판이 되었다는 뜻이다. 막연히 두려웠던 숫자 3은 사실 별게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B를 알게 된 후 서른을 맞이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여전히 가끔 유치하지만 예전의 내가 아니고, 겉으로나 안으로나 변해가는 나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됐으며, 조금 덜 완벽한 나를 좋아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모두 B가 알려준 것이다. 2. B의 생일을 함께 맞이한 두 번째 해. 생일마다 케이크를 챙기지 않았다던 그 애에게 두 번째 생일 케이크를 먹이는 해이기도 했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는 것을 증명하듯 먹이는 것을 좋아하는 기질까지 닮아갔다. 올해는 살을 좀 빼야지. 그 애를 찌우는 건 행복한 일이지만, 나는 좀 각성해야 할 필요가 있다. 3. 인생이 리듬게임이라면, 2월에 내 승률은 꽤 좋지 않았다. 평생 콤플렉스였던 주근깨를 레이저로 헤집어놓은 뒤로, 컨디션 최저를 찍으면 얼굴이 홍당무가 되는 저주에 걸렸고 그것이 올해 2월에 발현되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경험치가 무서운 것이, 재작년 처음 저주가 발현되었을 때는 어쩔 줄을 몰라 안절부절못하던 내가 지금은 느긋이 대처하고 있다는 것이다. 2년 주기마다 이래왔으니 나는 이제 언제 발현될지 모를 저주를 위해 26년을 대비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없다. 제법 초연이라는 단어와 가까워지고 있는 듯 하다. 4. 일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다. 연봉협상은 아쉬웠고 마무리는 찜찜했다. 당장 1, 2년 전만 해도 열정을 쫓자며, 좋아하는 일을 하자며- 주머니에 얼마가 들어오는지는 뒷전이었던 때가 있었다. 그때의 어린 나를 기특하게 여기는 한편, 지금에 와선 일하는 능력만큼 회사에서 한 개인을 얼마큼 인정해 주는지, 구성원에 대한 투자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곱씹게 되었다. 나의 가치를 올리는 것은 내가 나의 가치를 제대로 판단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 그간 열심히, 즐겁게 일했지만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 일’만큼은. B는 그런 나를 달래거나 나무라줬다. 5. 아낌없이 받은 달이다. B의 생일이 있는 달이었지만, 동시에 나의 두 번째 생일이 생긴 달. 밤낮없이 일하던 그 애는 그렇게 자신의 잠과 맞바꿔 번 돈으로 내 것들을 사주기 바빴다. 한사코 뜯어말리면 ‘이게 내 낙이야. 행복이야.’라고 말하는 B. 그 애가 알려주는 사랑이란 이렇기도 하고 저렇기도 하며, 변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것이었다. 좋다, 변화하는 모든 사랑들을 수집하는 일 또한. 6. 던져 놓고 있던 일들이 다시 반가운 소식으로 돌아온 달. 시를 썼던 과거, 책을 만들었던 과거와는 또 다른 분야에서 일하고 있지만 전시라는 세계도 어쩌면 거대한 이야기가 있는 곳. 각각의 그림들을 묶고 이야기를 풀어내는 과정은 고통과 희열의 연속이다. 한 번도 변함없이 나는 일할 때마다 이런 생각을 떠올리곤 한다. ‘아, 시를 배우길 잘했다’ 7. 환승연애3에 빠졌다. 이토록 혐오의 세상에서 해마다 연애 프로그램이 나오는 아이러니. 그 지점이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또래 사람들의 연애관과 다양한 인간군상을 엿볼 수 있는 짜릿함. 미숙함과 능숙함마저 모든 것이 재미가 된다. 어쩔 수 없이 사람은 ‘사랑’을 사랑한다. 8. 2월의 마지막인 오늘, 목 빠지게 기다렸던 B의 생일 선물이 도착했다. 프리오더로 주문해 두고 바다를 건너오기만을 얼마나 손꼽았는지. 그 애는 신이 나서 포장지를 뜯고 키캡이 모두 빠져 있는 키보드를 눌러대며 웃어주었다. 아낌없이 주는 것은 마이너스가 아니라 플러스의 제곱이다. 행복도 충만함도 나는 주었을 뿐인데 배로 받았다. 기쁘다. 9. 오는 불행과 나누는 기쁨과 변화하는 내 모습을 편안하게 마주할 수 있는 일. 나는 그런 것들을 해내는 내가 마음에 든다. 힘들었던 달이었지만 더더욱, 무탈히 보낸 나를. 10. 본격적으로 함께 사는 것을 이야기 나누는 때. 눈뜨고 감는 동안 B가 더욱 함께였으면 좋겠다. 식상하지만 대체할 수 없는 ‘평생’이라는 단어를 덧붙여. #수진기록✍🏻 #수진에세이